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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사월 초칠일 진시 덧글 0 | 조회 27 | 2019-07-15 16:04:09
예지  

상감께서는 입참조계(入參朝啓)를 명하신 동궁을 뒤따르게 합시고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을 납시왔다. 약간 바람이 불 었으나 그것은 연길에 가볍게 먼지를 날릴 만밖에 못하였 다. 이날 상감께서는 황포에 익선관을 쓰시고 매양 좋아하 시는 누런빛 나는 연을 탑셨다.

병조판서 윤자운(尹子雲)이 호위하고 영의정 신숙주(申叔 舟), 좌의정 구치관(具致寬), 좌참찬 최항(崔恒), 이조판서 한 계희, 호조판서 노사신, 공조판서 김수온, 지중추원사 양성 지(梁誠之), 예조판서 원효연(元孝然), 형조판서 김질(金?), 도승지 이파(李坡), 좌승지 김수녕(金壽寧), 우승지 박건(朴 楗), 한성판윤 이석형(李石亨), 전 예조판사 인산군 홍윤성 (洪允成), 형조참판 임원준(任元濬), 예문제학 이승소(李承 召), 하동부원군 정인지, 상당부원군 한명회(韓明澮), 중추원 부사 서거정(徐居正), 대사헌 김종순(金從舜) 등 문무 이품 이상의 거의 전부가 호종하였다.

종친인 효령대군 보(補), 임영대군 구(?), 영응대군 염(琰), 영순군 부(溥)는 원각사 조성도제조(造成都提調)로 이미 원 각사에서 대가를 지영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왕께서는 온양 온천 행궁에 가끔 거둥이 계시었지마는 이 처럼 만조백관을 거느리시고 하신 거둥은 즉위 이래에 처음 이었다. 더구나 이날의 호종 제신이 다 후세에 이름을 남길 큰 인물들인 것으로 보아서 실로 공전의 장관이라고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장안 백성들도 이 큰 인물들을 한꺼번에 보는 것은 처음이다.

상감은 태조대왕 그대로라고 원호(元昊)가 탄복할 만한 어 른이시다. 키도 훨씬 크시고 몸도 장대하시고 눈이나 수염 이나 다 위풍이 늠름하실뿐더러 이 어른이 진양대군이니, 수양대군이니 하고 불려지시던 잠저(潛邸)시대로부터 백성들 은 이 어른의 일을 잘 알았다. 너무도 용맹이 과인하시기 때문에 그 아버님 세종대왕께서,

"너같이 용맹한 사람은 부드러움을 공부하여야 한다."

하셔서 이름도 구슬옥 변에 부드러울 유 한 '■'자로 지으 시고 또,

"너같이 용맹한 사람은 넓은 옷을 입어야 한다."

하셔서 소매가 넓은 옷을 입게 하셨기 때문에 '소매 넓으신 나으리'라는 별명을 들으셨다는 것이나, 또 한 번 그 아우님 되는 저 글씨 잘 쓰고 호탕하기로 유명하던 안평대군 용 (瑢), 단종대왕을 복위하려다가 돌아간 금성대군 유(瑜), 기 타의 아우님들과 다른 친구들과 삼각산 백운대에 올라가셨 을 때에 다들 뛰임바위를 못 뛰건마는 상감께서는 평지를 다니듯이 뛰셨다는 말이나, 또 활을 잘 쏘셔서 그 아버님 세종대왕과 형님이신 문종대왕을 모시고 왕방산(王方山)에 사냥을 가셨을 때에 연하여 사슴 일곱 마리를 하나도 놓치 지 아니하시고 쏘셨으되 꼭 개개이 목을 쏘셨으므로 세종대 왕께서도 칭찬하시고 그 형님이시오 장차 문종대왕이 되실 동궁께서는 하도 기뻐하셔서 그 아우님이신, 그때에는 수양 대군이라고 부르던 금상의 활을 당기시어,

"鐵石其弓. 霹靂其矢, 吾見其張, 未見其弛."

라고 쓰셨다는 것이나, 심지어 열네 살 적에 어떤 계집의 집에 오입을 가셨다가 불의에 그 서방이 돌아오매 두 길이 나 되는 담을 훌쩍 뛰어넘으셨다는 것 같은 세세한 일까지 도 백성들은 다 알고 있었다.

상감께서 어린 임금을 폐하시고 몸소 임금이 되시고, 다음 에 그 어린 임금을 상왕이라고 여쭙던 것도 폐하시고 노산 군(魯山君)으로 강봉하셔서 강원도 영월에 유폐하시고, 또 다음에는 금부도사를 보내어 그 어리신 임금을 죽이시고, 또 다음에는 성삼문(成三問), 박팽년(朴彭年), 하위지(河緯 地), 유응부(兪應孚), 유성원(柳成源), 이개(李塏), 성승(成 勝), 허후(許?)등을 비롯하여 여러 전조의 충신과 또 안평대 군, 금성대군 등 친동기를 죽이셨다는 것으로 인망을 잃으 심이 크셨으나, 즉위 후 십년간에 하신 선정으로 하여서 백 성들은 우리 임금 만세라는 칭송을 하게 된 것이었다. 더구 나 불교를 중흥하시는 대호법왕이시라 하여 조상 적부터 불 교를 존숭하여 오는 다수 백성들은 진정으로 이 임금의 만 세를 부처님께 비는 것이었다.

"옆에 소인들이 있어서."

상감께서 잘못하신 듯한 정사의 책임은 소인들에게로 돌리 는 것이 백성들의 마음이었고,

"상감께서 인자하셔서."

이러한 말로 한명회, 홍윤성, 양정(楊汀) 같은 탐학 무도한 공신들을 제거하지 못하시는 까닭을 삼게 되었다.

가끔 상감께서 참혹하게 인명을 죽이시는 일이 있으면, 그 것은

"상감께서는 그렇게 인자하시지마는 성미가 급하셔서."

이렇게 백성들은 서로 상감을 변호하는 것이었다.